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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의단상/행복한 삶

위버맨쉬(Ubermensch)

위버맨쉬(Übermensch) - 초인


  "오늘도 불안정하지만 꿈을 품고 앞날을 향해 떠난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확실한 것만 쫓다가는 확실하게 기회를 잡을 수 없다. 미래가 불확실해야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시도와 물음, 그것이 나의 모든 행로 였다. 그리고 진정, 같은 믈음에 대답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내 취향이 이렷다." - 출처 : 짜라투스트라


  하루하루 자신과 전투를 벌이는 사람,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사는지를 자문하고 세상을 향해 질문의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 위버맨쉬이다. 주체적 의지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동정과 연민을 오히려 치욕스럽게 여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남의 동정만을 바란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 주체성과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고 무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인간이 위버맨쉬이다. 


  위버맨쉬는 종교나 신에게 의지하는 주체성 없는 의존적 인간보다 반복되는 역사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허무에 결연히 맞서는 사람이다. 이러한 위버멘쉬는 덧없는 삶이 무한히 되풀이 되더라도 자신의 굳은 의지와 참된 용기로 비극적 운명마저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다.


  동물과 위버맨쉬 사이의 중간자적 존재인 인간은 위버맨쉬가 되려는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다.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제어하는 고정적인 모든 것이 나의 영토라면, 그 영토를 벗어나는 탈 영토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 존재는 노마드(nomad)가 된다. 탈 영토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정된 것과 다른, 즉 '차이'가 나는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차이가 나는 것만이 새로운 창조를 가져 올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차이를 생성하지 못하는 개인의 삶은 살아 있는 삶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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